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석조물공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돌로 만든 전시물을 한데 모은 야외 전시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만들어진 석탑과 석불 등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물론 진품은 아니고 잘 만들어 놓은 복제품이긴 하겠지만 말이죠

근데 그거 다 보신분 있으신가요?
마실 삼아, 운동 삼아 자주 가는 저 조차도 매번 그냥 대충 훑어보고 지나가는데
하물며 간만에 시간 내서 박물관 안에 전시물 보는 것도 힘든데 밖에 있는 것 까지 다 보신 분은 없으실거라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래서 한번 다 찍어보았습니다
물론 일부러 다 찍은건 절~~대 아니고요 산책 삼아 나갔다가 한번 다 담아보자 하고 열심히 찍었습니다
작품 사진 찍는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발로 사진을 찍는 바람에 뭐 사진은 그냥 아주 저질입니다. ㅋㅋㅋㅋ
그리고 사진 밑에 있는 설명들은 박물관에 적혀 있던거 고대로 적은 것입니다



남계원  칠층석탑

경기 개성 남계원터, 고려, 11세기, 국보 100호

이 탑은 세부 묘사에서는 통일신라 석탑을 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탑신이 7층이고, 지붕이 얇고 넓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탑신의 두께가 둔중한 느낌을 주는 고려 탑 특유의 특징도 보인다, 특히 이 탑에서는 고려 충렬왕 9년(1283)에 넣은 것으로 여겨지는 쪽물을 들인 종이에 은물로 글씨를 쓴 경전 칠곱 축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경북 김천 갈항사 터, 통일신라, 758년, 국보 99호

 통일신라시대에는 이 탑처럼 2단의 기단부와 3층의 탑신부로 이루어진 탑이 일반적인 형태로 많이 만들어졌다. 이 탑이 있던 길항사는 통일신라 초기 절인 감은사처럼 하나의 금당에 두 탑이 있는 배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탑의 기단부에 새겨진 글을 통해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영묘사 언적법사 세 남매가 이 탑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홍제동 오층석탑

서울 홍제동, 고려, 11세기, 보물 166호

  이 석탑은 서울 홍제동 사현사 터에 있던 탑으로 고려 정종 11년(1045) 사현사 창건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새김법과 새롭게 유행한 탑신 받침의 덧붙임, 그리고 벽 테두리 장식 등에서 고려 전기 석탑의 조형미가 드러난다.




고달사 쌍사자 석등

경기 여주 고달사 터, 고려, 10세기, 보물 282호

  두마리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석등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러한 형태의 석등이 등장하지만, 이 고달사 쌍사자 석등은 다른 쌍사자 석등과 달리 웅크린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어 이채롭다. 이 석등은 고달사자 우리나라 3대 선원의 하나인 고달원으로 명성을 떨치던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천수사 오층석탑

강원 원주 천수사 터, 고려

  하층기단 덮개돌 아래 부재는 없어졌다. 각각의 탑신부 몸돌은 한 개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낮아진다. 지붕 처마에는 각 층마다 3단의 받침이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풍경의 일종인 풍탁을 단 작은 구멍이 네 개씩 남아 있다. 탑 꼭대기 장식인 상륜부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천수사 삼층석탑

강원 원주 천수사터, 고려

 탑의 몸체를 받치고 있는 기단부는 통일신라 석탑에서 보이는 2층 기단 형식이다. 탑신부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1층과 2층 탑신 아래에는 굄돌이 놓여져 있다. 지붕 처마 층단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고 지붕의 윗면은 경사가 완만하다. 탑의 꼭대기에 해당되는 상륜부에는 네모난 지붕 모양 장식만 남아 있다.




영전사 보제존자 사리탑

강원 원주 영전사 터, 고려, 1388년, 보물 358호

 보제존자 나옹(1320-1376)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고려 우왕 14년(1388)에 세운 승탑이다. 보통 승탑이 팔각 집 모양이거나 종 모양을 띠는 것에 비해 이 승탑은 특이하게 불탑과 같이 네모난 형태의 두 탑으로 이루어져 매우 이채롭다. 나옹의 사리를 모신 승탑은 이 탑 외에도 그가 입적한 여주 신륵사와 그가 주지로 있던 양주 회암사 터에도남아 있다.




안흥사 오층석탑

경기 이천 안흥사 터, 통일신라 말-고려 초, 10세기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는 일반적인 형태이다. 탑신 높이는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며, 처마 밑 층단받침은 네 단인 5층을 제외하고는 급격히 줄어들며, 처마 밑 충단 받침은 네 단인 5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섯 단을 이루고 있다. 상륜부에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 탑의 세부 수법이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띠며, 균형 잡힌 비례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인다.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

강원 원주 거돈사 터, 고려, 1018-1025년, 보물 190호

 원공국사 지종의 묘탑이다, 강원도 원주 거돈사 터에는 이 승탑과 짝을 이루는 원공국사의 탑비가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승탑 형식을 이어받아 단정하고 균형 잡힌 팔각의 형태에 사천왕, 팔부중 등의 부조상을 새겼다. 탑신 정면 문 위에 탑 이름을 새긴 점이나 탑신에 꽃띠 장식을 한 것 등은 고려시대에 새롭게 시도된 것이다.




염거화상 탑

강원 원주 흥법사 터 출토로 전함, 통일신라, 844년, 국보 104호

 이 승탑은 탑지가 함께 전해져, 승탑의 주인공과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탑이다. 신라 문성왕 6년(844)에 선종 산문 가운데 하나인 가지산문의 제2대 선사인 염거화상(?-844)을 위해 만든 것으로 팔각 집 모양에 사천왕 등의 부조상을 새긴 전형적인 승탑의 모습이다. 이후 만들어진 승탑들은 이 승탑을 따라 대부분 팔각 구조에 화려한 부조상을 새겼다.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

경남 창원 봉림사 터, 통일신라, 923년, 보물 362호

  이 승탑은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으로 신라 선종 산문 중 하나인 봉림산문을 세운 진경대사 심희(855-923)의 묘탑이다. 팔각 집 모양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체에 장식을 절제하면서도 변화를 시도한 조형적 특징을 보인다. 특히 기단부 가운데 꽃띠를 두른 북 모양 중대석은 같은 시기 석등에서도 보이는 형식 가운데 하나이다.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

경기 양평 보리사 터, 고려, 939년, 보물 361호

 이 탑비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활동하던 성주산문의 대경대사 여엄(862-930)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대사가 입적한 지 9년이 지난 고려 태조 22년(939)에 세워졌다. 거북 받침돌의 거북 머리가 용머리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탑비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머릿돌의 구름과 용은 매우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흥법사 진공대사 탑과 석관

강원 원주 흥법사 터, 고려, 940년, 보물 365호

 이 승탑은 신라 신덕왕과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낸 진공대사 충담(869-940)의 묘탑이다. 진공대사의 입적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 승탑의 탐신은 팔각 집 모양을 기본 평면으로 하고 있지만, 기단 중대석은 원통형에 구름과 용무늬가 화려하게 조가고디어 있어 매우 이채롭다. 이 탑과 함께 발견된 석관을 통해, 고승의 시신을 화장 뿐만 아니라 매장도 했음을 알 수 있다.




현화사 석등

경기 개성 현화사 터, 고려, 1020년

 고려 현종 10년(1020) 개성 현화사에 세운 석등이다. 규모가 큰 이 석등으로 미루어 당시 국가 대찰로 창건된 현화사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석등의 불발기집은 팔각으로 된 것이 많은데, 이 석등은 사각이며 불빛 창도 따로 없이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여 있다. 석등 앞에 있는 배례석은 공양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등공양'을 할 때 예를 갖추기 위해 만든 것이다.




나주 서문 석등

전남 나주 서문, 고려, 1093년, 보물 364호

 이 석등 기단부는 긴 팔각기둥과 위·아래에 연꽃을 장식한 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가운데 긴 팔각 기둥돌은 간주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새겨진 글을 통해 고려 선종 10년(1093)에 만들어진 석등임을 알 수 있다. 불발기집은 원래 파손되어 없었으나, 1929년 나주에서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새로 만들었으며, 맨 꼭대기 장식도 새로 만든 것이다.




북묘 비

조선, 1887년

 이 비석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 관우를 기리기 위해, 조선 고종 20년(1883)에 세운 북묘에 있던 것이다. 북묘는 서울 명륜동 흥덕골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비석은 4년 후인 고종 24년(1887)에 세웠다. 비문은 우리나라에서 관우를 기리게 된 경위, 북묘를 세우게 된 내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은 고종 임금이 직접 짓고, 글씨는 민영환이 썼다.




온녕군 석곽

조선, 1453년

 이 석곽은 경기도 양주 금표 지역 안의 온녕군 묘에서 나왔다. 온녕군은 조선 태종의 일곱째 왕자이다. 무덤에서는 고려 왕실의 무덤과 달리 구리 수저 한 벌과 분청사기 항아리 둘, 접시 두 개만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조선 왕실의 검소함을 엿볼 수 있다.




태실 석함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축현리, 조선시대

 조선시대 왕가에서는 자손이 태어나면 아기의 태(태, 탯줄과 태반)을 항아리에 넣어 좋은 곳에 안치하여 태실을 조성하던 전통이 있었다. 이 석재는 태항아리를 보관하던 태실 석함으로 윗 뚜껑 옆면 4곳에 큼직한 돌기가 있고, 몸돌 중앙부에는 태항아리를 안치하였던 네모난 공간이 있다.





장명등

무덤 앞을 밝히는 석등, 조선




석양

무덤을 지키는 양, 조선





문인석

조선시대,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부처

고려, 10-11세기



역쉬 사진을 발로 찍으니.. ㅋㅋ
그리고 글 제목이 영~~ 껄쩍지근 하네요
다른 분들은 그래 이건 클릭해야돼 란 마음에 쏙 들게 제목을 지으시던데
제 글의 저 제목은.. 이건 뭥미 이런 제목이니......
신고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 국립중앙박물관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DanielKang Trackback 0 : Comment 0